지난 번 커트 실링에 이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 할 수 있을것인가?' 2편으로 페드로 마르티네스 편을 준비했다. 지난 번 실링보다는 수월하게 입성 하리라 예상해 보지만 그래도 약간의 논란 여지가 남은 선수인 만큼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페르도 마르티네스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다져스 라소다가 버린 페드로? 돈 짐머를 내리친 페드로? who's your daddy? 뭐 아무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외계인 P45 아닐까 한다. 양키스에게 17K 1피안타[각주:1] 의 굴욕을 선사하고, 조토리에게 외계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스펙타클하고, 임펙트 있던 4년을 보낸 투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페드로는 왜소한 체격탓에 허벅지를 너무 사랑하는 라소다가 버린 투수다.[각주:2] 투수는 체격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라소다의 마인드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체격의 소유자였기에 페드로는 93년 몬트리올로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94년부터 선발로 등판하면서 몬트리올의 에이스로 자리잡느다. 그리고 97년 1.90의 방어율고 17승8패 13완투로 내셔날리그 사이영상을 가져간다. 305K의 삼진은 옵션이다. 페드로는 첫 두달동안 8승1패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30승을 투수가 탄생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후 너무 운이 없어서 17승 8패로 마치고 말았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페드로의 레즈전 1피안타 셧아웃 게임이나, 디트로이트와의 인터리그 경기가 바로 97년이었다. 그리고 페드로는 로져클레멘스 이 후 에이스를 찾아 헤메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보스턴에서의 첫 해 살짝 적응기를 거치고 [각주:3] 또 다시 강렬한 2년을 보내게 된다. 


<외계와 교신>

 페드로에 대한 소개는 간략하게 하고 무엇이 페드로의 명예의 전당행을 의심하게 했을까? 의문점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 그의 적은 승수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번 커트실링과 마찬가지다. 219라는 승은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데 당연히 걸림돌이다. 300승이라는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 승수에는 턱없이 모자르고 최소 250승은 되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내구성이다. 가장 많이 던진 이닝이 241이닝이다. 이것은 몬트리올에서의 이닝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선발등판했을때가 33번이다. 분명 페드로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임펙트 있었던 시즌을 보낸게 확실한데 막상 뜯어보니 페드로는 선발등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스라면 최소 32번에서 36번까지 등판한다. 그런데 페드로는 이 기준치를 18년 커리어동안 단 2번만 지켯을뿐이다. 

 세 번째는 약물논쟁인데, http://dominicanoshoy.com/articulos/articulo/gran-revuelo-por-publicacion-lista-de-presuntos-positivos/ 얼마 전, 이 링크가 나돌기 시작하던데 난 이거랑 똑같은 명단을 2년전인가 봤다. 링크만 올려놓고 '신빙성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약물명단 이라고 한다.' 라고 하는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단순 조회수 올리기에 불과한 찌라시다. 무시해도 된다. 차라리 페드로 나이 논쟁 이라면 훨씬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페드로는 일찍 선수생활의 말년을 맞이했는데 나이로 봤을때 차라리 나이를 속인거라고 했으면 믿음은 가기 때문이다. 


<돈 짐머처럼 약물기사 따윈 엎어버리길>

 페드로는 누구보다 강렬했던시즌 보낸 투수라고 앞서 말했다. 그렇다면 페드로는 누구와 비교해야 할까? 베이스볼 리퍼런스에서는 그를 커트실링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보냈다고 하는데 뭐 공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실링과의 비교보다는 샌디쿠펙스와의 비교를 더욱 추천하고 싶다. 3번의 사이영상,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165승을 거두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샌디쿠펙스와 비교하는것이 페드로에게는 더욱 합당하다. 

샌디쿠펙스 

1963년 25승 5패 1.88 311이닝 159
1964년 19승 5패 2.04 223이닝188
1965년 26승 8패 2.04 335.2이닝 160
1966년 27승 9패 1.73 323이닝 190 

 페드로

1997년 17승 8패 1.90 241.1이닝 219
1998년 19승 7패 2.89 233.2이닝 163
1999년 23승 4패 2.07 213.1이닝 243
2000년 18승 6패 1.74 217이닝 291

 조정방어율에서는 페드로가 쿠펙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고, 이닝에서 쿠펙스는 페드로를 압도한다. 그런점에서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쿠펙스 시절에는 4선발 체제였다. 그리고 투고타저가 극에 올라 있는 시즌이었다. 쿠펙스는 65년 66년 41번 선발 등판해서 27번의 완투를 했는데 이 수치는 60%를 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수치다. 그리고 페드로는 쿠펙스보다 많게는 조정방어율에서 100이나 앞서는데 페드로가 뛰었던 시대는 타고 투저 시대였다.페드로가 쿠펙스 시절로 가서 던진다면 0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해야 하는데 과연 말이 될 수 있을까? 페드로가 쿠펙스에게 밀리는 점이 딱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월드시리즈 반지였다. 하지만 2004년 레드싹스가 저주를 풀면서 이 마저도 얻었으니 이제는 쿠펙스와 동급이라고 해도 누가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페드로, 쿠펙스 모두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투수였으며, 쿠펙스도 갔는데 페드로도 명예의 전당에 가야한다. 

 
  1. 1피안타가 홈런, 양키스는 노블락이 힛바이피치로 출루했고, 데이비스가 홈런 친 2번의 출루가 유일했다. [본문으로]
  2. 라소다는 허벅지가 얇은 페드로를몬트리올로 보내고, 허벅지가 굵은 박찬호를 선택했다. [본문으로]
  3. 적응기라고 했지만 그래도 방어율 2.89, 비록 만장일치 사이영상 이긴 했지만 클레멘스에 이어 2위를 기록한다. [본문으로]
by 운영의유희 2011. 6. 7. 22:53